책소개
한국 대표 시인의 육필시집은 시인이 손으로 직접 써서 만든 시집이다. 자신의 시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시들을 골랐다. 시인들은 육필시집을 출간하는 소회도 책머리에 육필로 적었다. 육필시집을 자신의 분신처럼 생각하는 시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육필시집은 생활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는 시를 다시 생활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기획했다. 시를 어렵고 고상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쉽고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것으로 느끼게 함으로써 새로운 시의 시대를 열고자 한다.
시집은 시인의 육필 이외에는 그 어떤 장식도 없다. 틀리게 쓴 글씨를 고친 흔적도 그대로 두었다. 간혹 알아보기 힘든 글자들이 있기에 맞은편 페이지에 활자를 함께 넣었다.
이 세상에서 소풍을 끝내고 돌아간 고 김춘수, 김영태, 정공채, 박명용, 이성부 시인의 유필을 만날 수 있다. 살아생전 시인의 얼굴을 마주 대하는 듯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200자평
1960년 등단한 이후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해 온 정진규 시인의 육필 시집.
표제시 <청렬(淸洌)>을 비롯한 53편의 시를 시인이 직접 가려 뽑고
정성껏 손으로 써서 실었다.
지은이
정진규
1939/ 경기도 안성시 미양면 보체리 12번지에서 아버지 동래인(東萊人) 정완모(鄭完謨)와 어머니 기계유씨(杞溪兪氏) 유부경(兪富卿) 사이의 10남매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남. 산과 들을 헤매고 다니거나 뒤뜰 서고(書庫)에 산적한 고서(古書)와 선조들의 문집(文集)들 사이에 숨어들어 한나절씩 책 냄새를 맡다가 나오곤 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냄.
1957/ 안성농업고등학교 재학 중 같은 학교의 김정혁, 박봉학, 홍성택 등과 동인 시집 ≪모화집(芽話集)≫, ≪바다로 가는 합창(合唱)≫ 등을 프린트본으로 간행, 이해 ‘학원문학상’을 받음.
1958/ 고려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에 입학, 당시 교수이던 조지훈 시인의 문하를 드나듦. 재학 중 인권환(고려대 교수), 박노준(한양대 교수), 이기서(고려대 교수), 변영림(정진규의 부인) 등과 동인 ‘청탑회(靑塔會)’를 만들어 동인지 ≪백류(白流)≫(프린트본)를 발간하는 등 ‘고대문학회’의 일원으로 활동함. ≪만해 한용운 문학전집(萬海韓龍雲文學全集)≫ 원고 발굴 정리에 참여함.
1960/ 조지훈, 김동명 두 분의 심사로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등단작은 <나팔 서정(抒情)>. 이해 여름부터 조동일(전 서울대 교수), 이유경(시인), 주문돈(시인), 박상배(시인) 등과 동인 ‘화요회(火曜會)’를 만들어 매주 시를 위한 토론회를 갖고 육당에서 청록파까지의 시를 체계적으로 읽음. 동시에 조동일의 번역으로 상징주의에서 현실주의까지 프랑스의 시세계를 섭렵, 현대시의 방법론에 눈뜨기 시작함.
1961/ 군에 자원 입대. 변영림과 결혼.
1962/ 장남 민영(敏泳, 독문학박사, 외국어대 강사) 태어남.
1963/ 학보병으로 제대. 시인 전봉건의 권유로 동인 ‘현대시’에 참가. 황운헌, 허만하, 김영태, 이유경, 주문돈, 김규태, 김종해, 이승훈, 이수익, 박의상 등과 제12집까지 활동, 이때 박목월, 박남수, 김수영, 김종삼, 전봉건, 김종길, 김광림 시인 등을 만남. 제1회 ‘고려대학교 문화상’을 받음.
1964/ 대학 졸업. 이후 풍문여고, 숭문고, 휘문고교 등에서 10여년 간 교직 생활. 딸 서영(栖英, 조각가, 서울대 강사) 태어남.
1965/ 김광림 시인의 주선으로 제1시집 ≪마른 수수깡의 평화(平和)≫(모음사) 출간.
1967/ 시론의 견해 차이로 말미암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동인 ‘현대시’를 떠남.
1969/ 전환의 시론 <시(詩)의 애매함에 대하여>와 <시(詩)의 정직함에 대하여>를 2회에 걸쳐 시지 ≪시인(詩人)≫(조태일 시인 주재)에 발표. 이때부터 시에 있어서 개인과 집단에 대한 대립적 사고의 통합 의지에 골몰함. 이해 차남 지영(芝泳, 회사원) 태어남.
1971/ 문학평론가 홍기삼의 주선으로 제2시집 ≪유한(有限)의 빗장≫(예술세계사) 출간.
1975/ 교직 생활을 청산하고 주식회사 진로에 입사, 1988년까지 홍보 관계 일을 함.
1977/ 제3시집 ≪들판의 비인 집이로다≫(교학사)를 출간. 이때부터 시에 산문 형태를 도입. 개인과 집단의 문제, 이른바 ‘시성(詩性)’과 ‘산문성(散文性)’의 구체적 통합에 들어감. 서정적 억양의 생명율과 환상의 파도가 있는 산문 형태를 새로운 시 형식으로 천착함.
1979/ 시인 김종해의 주선으로 제4시집 ≪매달려 있음의 세상≫(문학예술사) 출간. 이해부터 이근배, 허영자, 김후란, 김종해, 이탄, 이건청, 강우식 시인 등과 함께 <현대시를 위한 실험 무대>를 극단 ‘민예극장’과 함께 갖기 시작함. 시극 <빛이여 빛이여>를 허규 연출로 공연. 이와 같은 시와 무대에 대한 관심은 ‘시춤’으로 이어져 <따뜻한 상징>(창무춤터, 1987), <오열도>(김숙자 무용단, 문예회관, 1988), <화(和)>(김숙자 무용단, 국립극장 대극장, 1990), <먹춤>(직접 출연, 류기봉 포도밭, 1990), 교향시 <조용한 아침의 나라>(장일남 작곡, 세종문화회관, 1990) 등의 공연에 참여한다.
1980/ 시집 ≪매달려 있음의 세상≫으로 제12회 ‘한국시인협회상’을 수상함.
1981/ 이상화 평전 ≪마돈나 언젠들 안 갈 수 있으랴≫(문학세계사) 간행.
1982/ 경기도 이천 현암요(玄岩窯)에서 그간 관심을 가져왔던 붓글씨로 1천 개의 백자에 우리의 시들을 적어 넣음. 이해부터 한국시인협회 사무국장을 맡아 1983년까지 일함.
1983/ 제5시집 ≪비어 있음의 충만을 위하여≫(민족문화사), 시론집 ≪한국현대시산고(韓國現代詩散藁)≫(민족문화사), 편저 ≪지훈시론(芝薰詩論)≫(민족문화사) 출간.
1984/ 제6시집 ≪연필로 쓰기≫(영언문화사) 출간. 이 시집에 대해 ‘산문시집’이라는 말을 시인 이탄이 붙임.
1985/ 시집 ≪연필로 쓰기≫로 ‘월탄문학상’ 수상.
1986/ 제7시집 ≪뼈에 대하여≫(정음사) 출간.
1987/ 시집 ≪뼈에 대하여≫로 ‘현대시학작품상’ 수상. 이해 문학선 ≪따뜻한 상징≫(나남) 출간.
1988/ 전봉건 시인의 작고로 월간 시 전문지 <현대시학>을 승계, 현재에 이르기까지 20년간 주간을 맡아 오고 있음.
1989/ 자선시집 ≪옹이에 대하여≫(문학사상사) 출간. 같은 해 그림시집 ≪꿈을 낳는 사람≫(한겨레) 출간.
1990/ 제8시집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문학세계사) 출간.
1991/ 한국대표시인 100인 선집 ≪말씀의 춤을 위하여≫(미래사) 출간.
1994/ 제9시집 ≪몸시(詩)≫(세계사) 출간. 시간 속의 우리 존재와 영원 속의 우리 존재를 함께 지니고 있는 실체를 ‘몸’이라 부르기 시작함.
1995/ ‘현대시’ 동인들과 재결합. 편저 ≪나의 시(詩), 나의 시 쓰기≫(토담) 출간.
1996/ 한국시인협회 상임위원장.
1997/ 제10시집 ≪알시(詩)≫(세계사) 출간. ‘몸’이 추구하는 우주적 완결성을 ‘알’로 상징화하고 있음.
1998/ 한국시인협회 회장으로 추대돼 2000년까지 맡음.
1999/ 후배 시인들과 제자들의 도움으로 시력 40년을 돌아보는 ≪정진규시력40년시제(鄭鎭圭詩歷40年詩祭)≫를 가짐(10. 5, 타워호텔).
2000/ 제11시집 ≪도둑이 다녀가셨다≫(세계사) 출간.
2001/ 시집 ≪도둑이 다녀가셨다≫로 ‘공초문학상’ 수상.
2002/ 한국 현대시 100인의 시를 붓글씨로 쓴 정진규 시서전(詩書展)을 10월 14일부터 10월 27일까지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마로니에미술관에서 갖고 도록 ≪경산시서(絅山詩書)≫(현대시학)를 간행.
2003/ 시론집 ≪질문과 과녁≫(동학사) 출간.
2004/ 제12시집 ≪본색(本色)≫(천년의시작) 출간.
2004/ 제2회 정진규의 춤 쓰기 먹춤 공연(9월 4일, 남양주 류기봉 포도원): 춤을 추며 50미터의 흰 광목에 붓으로 즉흥시를 써 내려감.
2005/ 독일어 번역 시집 ≪말씀의 춤(Tanz der Worte)≫(독일 프랑크푸르트 아벨라 사, 100편 수록) 출간. 문학평론가 정효구 교수의 ≪정진규의 시와 시론 연구≫(푸른사상사) 출간.
2007/ ≪껍질≫(세계사) 출간. ≪정진규 시선집≫(책만드는집) 출간.
2008/ ≪우리나라엔 풀밭이 많다≫(시월) 출간.
2009/ ≪공기는 내 사랑≫(책만드는집) 출간.
2011/ ≪사물들의 큰언니≫(책만드는집) 출간.
2011/ 현재 월간 시전문지 ≪현대시학≫ 주간.
고려대, 순천향대 강사,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교수 역임.
현재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강의 중.
차례
여의보주 7
시인의 말 9
들판의 비인 집이로다 10
연필로 쓰기 14
봄이 올 무렵 16
물소리 6 18
비누 20
서서 자는 말 24
물고기 1 26
물속엔 꽃의 두근거림이 있다 30
모슬포 바람 32
미수(未遂) 36
플러그 38
해인불(海印佛) 42
이별 44
속이 다 상해서 46
슬픔 48
우리나라엔 풀밭이 많다 50
도강록(渡江錄) 52
내장산 단풍 56
운필(運筆) 60
마지막 가을 64
틀니 68
맡겨 둔 것이 많다 70
본색(本色) 74
봄비 76
실솔 78
순천 찬새미골 청매화 80
돋보기 안경 82
자정향(紫丁香) 84
청렬(淸洌) 86
귀 88
번외(番外) 92
장마 94
달항아리 96
삽 100
아득한 봄날 102
비 오는 밤 104
부레 108
뒤꼍 110
입춘(立春) 112
삼합(三合) 114
청맹과니 116
눈물샘 마르다 118
나무의 키스 120
이번 봄 122
안목에서 126
새벽 감옥 130
임청정(臨淸亭) 소나무 132
원적지(原籍地) 136
벌초 138
가을 첼로 140
다시 내장산 단풍 142
새는 게 상책(上策)이다 146
봄, 석남사에서 148
시인 연보 151
책속으로
청렬(淸洌)
이 겨울 내내 내가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은 동상 걸린 내 발가락들 사이사이 깊게 박힌 서릿발들, 날카롭게 반짝거렸다 해동 무렵에야 그게 무에라는 걸 겨우 터득했다 만져지는 빛, 삼십 년만의 추위가 있던 날 어둠 하늘에서 내 몸에 비접(避接)된 별들의 눈물, 이런 강신(降神)도 있다 차가운